쇠락하던 車강국 스페인, 유럽 '전기차 허브'로

입력 2023-12-24 18:09   수정 2024-01-02 16:46


지난 1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전기차 제조업체 QEV테크놀로지 본사. 이 회사의 자체 완성차 브랜드인 ‘제로이드’가 새겨진 전기 트럭이 곳곳에 서 있었다. 뒤편의 작업장에선 현대자동차의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한 수소 버스 조립이 한창이었다. 이 회사는 직접 개발한 수소차 플랫폼으로 칠레의 광산을 달릴 소형 버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운행할 주행거리 600㎞ 이상의 대형 버스 등을 제작하고 있다. 호세 베이가 QEV 모빌리티부문 디렉터는 “수소연료전지는 현대차 제품을 쓰지만 플랫폼은 우리가 자체 개발하고 있다”며 “그동안 스페인 친환경 버스는 볼보 MAN 등에서 내연기관 플랫폼을 사와 개조해 썼지만, 앞으로는 기술 자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2013년 설립된 이 회사는 테슬라와 BMW 미니, 푸조 등 세계 유수의 완성차 업체에 전기 레이싱카 부품과 기술을 제공해온 기업이다. 전기모터부터 배터리팩, 전자제어장치(ECU) 제작 기술까지 갖추고 있지만 완성차 대량 양산까진 하지 못했다. 현지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스페인은 연 20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주문받아 생산하는 유럽 2위 제조 강국인데도 독일 한국 등과 달리 자국 내 자체 브랜드가 없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반전의 계기는 일본 닛산의 바르셀로나 철수였다. 닛산은 2020년 디젤·가솔린차 생산이 대부분이던 바르셀로나 공장 폐쇄를 선언하고 이듬해 말 이곳을 떠났다. 바르셀로나 공장은 수년 전부터 닛산 본사에 전기차 생산 물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페인 정부와 카탈루냐주 정부는 이 경험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QEV·비테크·월박스 등 스페인 토종 전기차 관련 업체와 함께 3억유로(약 4300억원)를 들여 닛산의 폐공장을 ‘전기차 생산 허브’로 개조하는 디허브(D-Hub)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들 업체는 자체 전기차를 최대 연 18만 대 생산할 예정이다. 연산 10만 대 규모의 설비는 ‘다품종 주문 생산 기지’로 운영한다. 중국 체리자동차와 주문 생산을 협의 중이다. 리카드 기베르트 디허브 디렉터는 “스페인 현지 생산 기반이 없는 해외 전기차 업체들을 위한 '랜딩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모든 설비와 40년의 생산 노하우가 경쟁력”이라고 했다.

디허브 프로젝트는 진화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전기차 생산의 모든 공정을 자국 내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며 2021년부터 올해까지 민관 공동 240억유로(약 34조4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 결과 폭스바겐그룹은 “스페인을 유럽 전기차 허브로 키우겠다”며 100억유로(약 14조원) 투자를 결정했다. 이 중 30억유로가 연산 50만대 규모의 세아트 바르셀로나 공장 전동화에 투입된다. 이곳에선 2025년부터 폭스바겐의 주력 차세대 전기차인 ID.2올을 생산할 예정이다.

스페인은 카탈루냐주를 중심으로 전기차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마르크 리에라 세아트 부사장은 “전기차 부품의 75%를 국내 조달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구축했다”며 “전기차 전환에 성공하지 못하는 국가의 자동차산업은 죽는 길뿐”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 전문 조사기관 이노베브에 따르면 2030년 스페인의 전기차 생산량은 연 164만 대로 독일(121만 대), 프랑스(83만 대)를 제치고 유럽 1위에 오를 전망이다.

한국 전기차 관련 기업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을 제조하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5600억원을 투자해 카탈루냐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현대모비스, 성일하이텍 등도 스페인에 공장 설립을 결정했다.

알베르트 마두엘 카탈루냐 무역투자청장은 “카탈루냐는 스페인은 물론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제조업 경쟁력을 갖췄다”며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카탈루냐에 진출해 윈윈할 수 있도록 전력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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